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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라 가르침을 남긴 마더 테레사 수녀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도 남겨 주었다. 테레사 수녀는 스스로 하느님의 몽당연필이 되기를 원했고 온 몸을 바치고 사랑을 다해 버림받고 아파하며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폈다. 헌신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전 세계에 보여 주신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어린 시절
마더 테레사 수녀는 1910년에 믿음이 두터운 가톨릭 가장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테레사 수녀는 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 신앙심 깊은 아이였다. 18살이 되던 해 수녀가 되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인도에 있는 수녀회에 입회할 결심을 했으니 가족들은 매우 놀랐다. 테레사 수녀는 수녀 기간을 보낸 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을 떠나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거리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그 길로 주교를 찾아가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결국 2년 만에 허락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원을 나왔다.
빈민촌으로 들어간 테레사 수녀
인도의 가장 가난한 여인들이 입는 것과 똑같은 거친 무명 사리를 입고서 테레사 수녀가 맨 처음 한 일은 의료 기술을 배우는 일이었다. 기본적인 치료법을 알아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민촌으로 들어간 테레사 수녀는 가장 먼저 학교를 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학교에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동시에 종교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와 몇 달씩 머물면서 일을 도와주고 떠났다.
그중에 평생 테레사 수녀 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겠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했다. 사랑의 선교회에 들어온 수녀들은 단 몇 가지만 자신들의 것으로 지닐 수 있었다. 밥 먹을 때 사용하는 쇠로 된 접시, 물컵, 빨래하는 양동이, 얇은 이불 한채, 신발 한 켤레가 전부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겠다고 온 이상 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테레사 수녀님 생각이었다.
종교도 추월한 테레사 수녀
하루는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장소를 구하던 중 비어있는 사원을 얻어 쓰게 되었다. 수녀들은 그것을 깨끗이 청소하고 침대를 가져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편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신전을 비워 두던 힌두교인들이 몰려와 항의를 했다. 마음대로 신전을 더럽혔다며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하자 경찰서장은 테레사 수녀를 찾아갔다. 경찰서장은 그곳에서 수녀들이 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정성껏 닦아주고 입혀주고 돌봐주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힌두교인들에게 테레사 수녀를 쫓아내려면 당신들이 그들을 돌보라고 했다. 당신들이 할 일을 바로 테레사 수녀님이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들을 대신에 자기 이웃들을 돌보는 테레사 수녀를 쫓아낼 수는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장면은 아들에게 버림받아 거리에서 죽어가던 어떤 여인이 죽음을 맞는 장면이었다. 테레사 수녀가 거리에서 발견했을 때 그 여인은 쥐와 개미에게 뜯기고 살이 썩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 여인은 자기를 버린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깨끗이 씻기고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해 주며 극진한 사랑으로 대하는 테레사 수녀를 보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여인은 자신이 평생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살았지만 죽을 때는 천사처럼 죽어간다고 기뻐했다. 그 여인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테레사 수녀는 그 여인이 믿던 힌두교 장례 예식에 따라 화장을 해주었다. 수녀님은 돌보던 사람들이 죽으면 그가 믿는 종교에 따라 장례를 치러주었다.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수녀님의 종교관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사랑의 선교회
테레사 수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많은 일을 했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짓고 모여 살 수 있도록 마음을 지어 스스로 살아가도록 했다. 이렇듯이 수녀님이 하는 일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사랑의 선교회가 세워졌다. 우리나라에도 1977년에 사랑의 선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을 데려와 돌보거나 양로원을 운영하고 가정방문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1979년에는 테레사 수녀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다. 수녀님은 할 수 없이 상을 받으면서 상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또한 수상식 뒤에 있을 파티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을 의해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몽당연필처럼 온몸을 내어주신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살자고 했다. 심장이 좋지 않은 데다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수녀님은 산소호흡기를 자신에게 씌우는 비용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죽는다고 하면서 제발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처럼 죽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버려진 어린이와 환자,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50년 넘게 살아온 테레사 수녀는 1997년 87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테레사 수녀는 평소에 하느님께 자신을 몽당연필처럼 써 달라고 기도했다. 깎고 깎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말이다. 테레사 수녀는 그렇게 기도한 대로 세상을 살다 갔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다 내어 주었다. 테레사 수녀는 버려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되어냐고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이 있는지 그것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정성껏 돌보았다. 과거가 어찌 되었든 현재에는 희망을 잃고 쓰러져 있으므로 일으켜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녀님의 사랑은 기적을 만들기도 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데려와 돌본 사람들 중에 절반 가까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바로 수녀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살아갈 희망을 준 것이다.